다니엘은 풀무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형벌의 의미, 풀무불의 위력, 정치적 이해관계,,,
가장 가혹한 형벌이 내려지는 그 곳은 칠 배나 뜨거워져 있다.
그 곳에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들이 들어가게 된다.
자신이 모시는 왕은 화가 잔뜩 나있다.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친구들이 풀무불에 들어설 그 때,
다니엘은 은밀한 장소로 가서 생명을 건 기도를 하기로 결정한다.
하나님 앞에 선 다니엘의 마음은 풀무불의 그것보다 훨씬 더 뜨겁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친구들이 그렇게 된 것은 자신의 탓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을 지방관리로 추천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다니엘, 우리는 그저 평범한 예배자로 살아가겠네… 자네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최선이라고 생각하네…”
“자네들, 무슨 말을 하는가?
하나냐! 자네의 뛰어난 지성을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사용해야 하지 않나?
미사엘! 자네같이 사랑많은 사람이 리더십이 되어야 세상은 행복해진다네…
아사랴! 그 지방은 우리 이스라엘민족이 특히 많은 곳일세… 그들의 목자가 되어주게…”

그들을 설득한 것도, 그들을 느부갓네살에게 추천한 것도 자신이었기에, 지금 이 형벌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바쁜 일정중에라도 친구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더 열심히 했다면, 지금의 이 상황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었을거라고 애통해 한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 밖에 없었다.

다니엘에게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유일한 공동체였고, 교회였다. 즉 모든 것이었다.
친구들이 형체도 없이 사라지면, 다니엘 자신도 사라지는 것이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울부짖는다.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가 사실이라면, 하나님!
친구들에게 지금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 구원해 주십시오.
주님의 구원자되심을 세상이 알게 하여 주십시오.
대가가 필요하다면, 제 생명을 취하셔도 좋습니다.”
어느새, 다니엘의 땀과 눈물은 핏방울로 바뀌고 있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있다.
예수님처럼 하는 기도, 대속하는 기도이다.
다니엘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
“너… 나를 닮았구나…
고맙구나… 내가 처음 창조했던 그 형상이로다…”

동시에 세 친구의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감사합니다’는 신앙고백에 감동을 받으시고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직접 보내셨다.

“누구십니까?”
“나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라~”
“주님을 경배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예수의 위엄와 아름다움에 압도된 채,
자신들이 풀무불 속에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타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어릴 적부터 지적 호기심이 왕성했던 하나냐는 예수님께 질문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이 풀무불을 만든 이도 나요, 너희 몸을 만든 이도 나이니라.
그러므로,
풀무불의 능력을 없앨 수도 있고, 너희 몸을 타지 않게도 할 수 있느니라.”
“주님을 경배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참혹했던 풀무불 속은 어느새 예배 처소로 바뀌어 간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화려하나, 초라하나 
‘서있는 그 곳’을 성전으로 바꾸는 힘, 그것이 믿음이다…
적어도 다니엘과 친구들의 믿음은 그랬다. 
예수님이 실재하시는 곳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곳에는 세상의 어떤 풀무불도, 어떤 권세도 다 사라진다.
세상의 모든 잡음이 다 사라진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소리만 남는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찬송할지로다!”

– 2011년 1월 13일 새벽큐티중…
풀무불사건때 다니엘은 뭘 하고 있었을까를 묵상하다가
이야기형식으로 써보다…
다니엘의 기도를 배우고 싶다.
이번 큐티가 끝날 즈음엔… 내 기도가 조금이라도 성숙해져 있다면 참 좋겠다…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리는 ‘기도의 사람’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