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산 주위에 경계를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출 19:23)”

공간의 창조주, 모든 곳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경계선을 그으십니다. 선을 기준으로 이 쪽으로는 죄가 있고, 저쪽으로는 거룩이 있습니다. 죄인이 저쪽으로 넘어가는 순간 죽습니다. 죄인은 이쪽에 남아 있어도 죽게 됩니다. 죄를 싫어하시기에 죄인은 안된다는 공의의 선이지만, 죄인을 사랑하시기에 구원하시겠다는 사랑의 선입니다. 경계선은 생명선입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 8장 앞부분)”

생명의 창조주, 모든 이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경계선을 넘어와, 죽음이 예정된 사람들 사이에 오셨습니다. 땅에 그으신 선의 의미는 알 수 없으나, 그 분의 모든 흔적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땅 위에 쓰신 선은 한 여인을 살게 합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행 17:26-27)”

2차대전 전후로 현재의 국경선이 그어지게 되어, 수백수천년간의 종족 영토가 흐트러졌습니다. 거의 모든 분쟁의 원인은 경계선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죽어가고 있고, 죽어갈 것입니다. 이렇게 만든 영국, 미국 같은 기독교국가를 세상사람들은 비난합니다. 그러나 만일, 종족 영토가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면, 어땠을까요? 전쟁은 많지 않고, 평화의 시간이 길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혼란스럽지만 경계선을 흐트심으로 인해, 고아, 과부, 나그네들이 무수하게 발생하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이 생명선을 넘어와 구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깊이를 우리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국경선을 사망선이 아닌 생명선으로 여기고, 우리에게 찾아오는 작은 영혼들 최선 다해 섬기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선택해야 할 최상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선교는, 생명의 사람이 경계선을 넘어 죽음의 사람에게 찾아 가는 행위입니다. 지리적 국경선을 넘어가는 것도 선교, 사회적 차별선을 넘어가는 것도 선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경계선상에서 생명을 노래하고, 생명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입니다. 
경계선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저들을 보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여기시고, 축복하시고, 사랑하십시오. 차마 못 넘어 가시겠거든, 먼저 넘어가 땀흘리며 일하는 분들을 위해 기도의 시간을 나누시고, 재정도 나누십시오.

2007년 샘물교회를 비난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방식의 선교를 반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순교의 피가 여러 경계선상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그 피의 의미를 우리는 다 모르지만, 그 피를 하나님이 귀히 받으실 수 있고, 그 피를 따라 구원의 길을 여실 수 있으시다 생각해 주십시오. 순교의 피가 뿌려진 현장에서 구원에 이르는 자들의 숫자가 날마다 더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당신 나라의 역사를 멈추신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으십니다.

국경없는 OO회라는 단체들이 있습니다. 방법론에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 그 분들은 경계선을 넘어 누군가에게 빛을 비추시고 사랑을 나누시는 분들입니다. 
‘국경없는 약사회’를 만났습니다. 조건없이 생명의 약을 나누시겠다 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보는 듯합니다. 
당분간은 기도 속에 저 분들의 이름을 자주 부를 것 같습니다.

_20190328